은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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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새소망교회
2026-08-21
조회수 31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4:5-18)



오늘 본문에는 한 여자가 등장하고 있다.

본문은 그녀를 사마리아 여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우리는 이 여자의 정체를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 

일단 사마리아 여자다. 

사마리아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우리는 그녀가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또 이 여자는 남편을 다섯 이나 바꾼 여자다. 

18절.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사마리아 여자가 계속해서 남자를 바꾼 것인지, 

아니면 남자에게 계속해서 그녀가 버린 받은 것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한두 번 실패한 것도 아니고 무려 다섯 번이나 결혼생활에 실패했고, 

거기다가 사마리아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었으니, 

그녀는 그야말로 막장 인생의 주인공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오신다.

 

우리가 2주간에 걸쳐서 살펴보았듯이 요한복음 3장에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조금만 유의해서 읽어보면 알겠지만,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만남,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만남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만난다. 

반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서 낮에 직접 대면하신다. 


유대인 남자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신분도 높고, 

교육도 많이 받았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새인으로 존경받는 유대인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인 여자는 이름도 알 수 없을뿐더러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찍힌 여인이다. 

 

이러한 대조적인 두 만남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생 최고봉에 이른 니고데모로부터 인생 막장에 이른 사마리아 여자까지, 

그러니까 이 세상 누구라도 구원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거다. 

예수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일까? 

사마리아 여자 이야기의 결론에 해당하는 요한복음 4장 42절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42절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이시다.

예수님은 부자들만의 구주도 아니고, 지식인들만의 구주도 아니고, 

유대인들만의 구주도 아니고, 세상의 구주라는 것이다. 

막장 인생을 써 내려가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도, 

온갖 죄를 뒤집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도 구주시라는 거다. 


예수님은 인종, 피부색,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차별 없이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는 세상의 구주시라는 거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거다. 

 

그런데 여러분, 

전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자의 공통점이 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느 날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렀다. 

마침 그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어서, 예수님은 우물 곁에 앉아 쉬고 계셨다. 

그때가 몇 시인가?

6절.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그때는 유대 시간으로 여섯 시로, 낮 12시 정오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각이다.(태양이 작열하던 때) 

이때 낯선 광경이 펼쳐진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 시각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온 것이다. 

한낮의 폭염을 뚫고 우물가로 물을 길으러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우물 곁에 누가 앉아 있는가? 

남들의 시선을 피해 한낮에 물을 길으러 우물곁에 왔는데, 누군가 앉아 있는 거다. 

그것도 유대인 남자가 앉아 있는 거다. 

이 광경을 찬찬히 묵상해 보면, 참으로 낯설고 묘한 광경이다.

 

어쨌든 사마리아 여자는 낯설고 묘한 분위기 속에서, 

유대인 남정네를 애써 무시하며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유대인 남정네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다. 

7절.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물을 좀 달라는 거다. 

예수님은 주저 없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신다. 

 

그녀의 놀란 심정이, 충격적인 심정이 9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여기에 보면 유대인과 사마리아 여자가 극렬하게 대비되고 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거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예수님은 곧바로 “생수”에 관한 이야기로, 

사마리아 여자 입장에서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어 가신다. 

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나이까” 

사마리아 여자는 마치 예수님을 향해 “당신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유대인으로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당신이 넘으셨습니다.”라고 다그치듯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신다.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야 한다느니,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느니, 

그러면 내가 오히려 너에게 생수를 줄 수 있다느니’


사마리아 여자 입장에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으신 것이다.

하나 예수님의 강조점은 분명하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물 좀 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네가 나에게 부탁해야 마땅하다” 

어쨌든 사마리아 여자의 귀에 꽂히는 말은 뒷부분인 것 같다.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이라”

 

그래서 그녀는 즉각 이렇게 반문한다. 

11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표준새번역.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선생님은 어디에서 생수를 구하신다는 말입니까?


다른 건 몰라도, 뒷부분 “생수를 주겠다는 말에” 이렇듯 여인은 논리적으로 응수한다. 

“두레박도 없어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한 당신이, 무슨 수로 나에게 생수를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우물 말고 또 어디서 생수를 구해줄 수 있단 말입니까?”


여인의 말은 참으로 논리정연한 응수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반문이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를 육체의 갈증을 해갈하는 물로 생각했던 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니고데모를 호출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니고데모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요한복음 3장 4절.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을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 

좀 더 설명해 보자면 거듭남이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곧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을 말한다.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한 니고데모의 이해를 돕고자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신다. 

요한복음 3장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곧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위로부터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지금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신 생수는 

그녀가 생각하는 육체의 갈증을 해갈하는 물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생수의 이해를 돕고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13, 1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는 그저 육신의 목을 축이는 물이 아니라 

영생을 주는 샘물이라는 거다. 

 

요한복음 7장 37, 38,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진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신 생수는 곧 성령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우리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시는,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만족시켜 주시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영혼의 갈증을 유일하게 풀어주시고, 만족시켜 주시는 성령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지금 육체의 목마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목마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영혼의 목마름을 영원토록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성령이다. 

너의 삶의, 너의 인생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인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이다.


이렇듯 인생 최고봉에 이른 니고데모나, 

인생 막장을 걷고 있는 사마리아 여자나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면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무엇인가?

니고데모도, 사마리아 여인도 영혼의 목마름이 있었고, 

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우물을 팠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부와 권력과 율법 준수라는 우물을 팠다. 

니고데모는 바로 그러한 우물로부터 길러지는 물을 통해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판 그 어떤 우물로도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었고, 

하여 그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팠던 우물은 무엇인가?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의 영혼의 목마름을 남편을 통해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부지런히 남편이라는 우물을 팠다. 

그러나 그녀가 고백했듯이 지금 있는 남편도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면, 목마름의 내용은 다를지라도 우리도 각자 우물을 파고 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떤 우물을 파고 있는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어떤 우물을 부지런히 파고 있는가?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우리가 줄기차게 파는 우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예레미야 2장 1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비통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생수의 근원은 무엇인가? 

아니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혹,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외면한 채 우리도 계속해서 엉뚱한 웅덩이를 파고 있지는 않는가?

잠시 잠깐만 우리 목마름을 해갈해 줄 수 있는 웅덩이만 파고 있지는 않은가?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밀려오는 공허함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무엇을 해도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엉뚱한 웅덩이를 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물도, 어떤 생수도 우리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채워줄 수 없다. 

우리가 파야 할 유일한 우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우물을 팔 때 바로 거기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 곧 성령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오직 성령만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하며,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다. 

 

우리의 목마름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날마다 우리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만족과 충만함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54559 전라북도 익산시 선화로 73길 25-3 (부송동)

TEL. 063-833-4647  E-mail. ssmj29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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