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사도행전 7:37-43)
누군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의 특징을 15가지로 정리했다.
1. 살아있는 교회의 지출은 언제나 수입을 초과하고, 죽어있는 교회는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
2. 살아있는 교회는 주차 문제를 겪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주차장이 텅 비어있다.
3.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 시끄러운데, 죽어있는 교회는 공동묘지처럼 고요하다.
4. 살아있는 교회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여 변화를 도모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5. 살아있는 교회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새신자들이 등록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6. 살아있는 교회는 세계 선교를 위해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을 교회 안에 쌓아둔다.
7. 살아있는 교회는 규칙적으로, 기쁘게 봉헌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인색한 구두쇠들로 가득하다.
8. 살아있는 교회는 기도와 믿음을 바탕으로 전진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해서만 행동한다.
9.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 개척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과 시간과 재능을 허비할까 두려워한다.
10.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학교 공간이 늘 부족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교회학교 공간이 남아돈다.
11. 살아있는 교회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환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자기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을 환영한다.
12. 살아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자기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거의 그러지 않는다.
13. 살아있는 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사역에 열정적으로 지원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기능만 돌아갈 뿐이다.
14. 살아있는 교회 성도들은 도와줄 성도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죽어있는 교회 성도들은 불평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15. 살아있는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 성도들은 나눌만한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분은 방금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의 특징, 15가지를 들어보셨다. 이 기준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은 있다고 생각한다.
15가지의 내용을 요약해본다면, 살아있는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는 교회이며, 반면에 죽어있는 교회는 변화와 성장을 멈추어버린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와 성장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왕자 모세가 아니라 광야의 나그네 모세를 통해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구원역사를 이루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탈출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시내산 자락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왜냐하면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맺기 때문이다. 이른 바 시내산 언약이 체결된다.
출애굽기 19장 5,6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의 성격을 보여준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언약의 핵심골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조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 무엇인가?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분명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자,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데 철저히 실패한다. 구약의 역사는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다. 이스라엘의 죄악의 역사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데 실패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킬 수도 없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인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 38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38절.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곧 십계명으로 압축되는 율법은 다름 아닌 살아있는 말씀이다. 모세는 죽어있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살아있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있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신 분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참여하셨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살아계시는,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66권의 성경은 살아계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66권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의 힘찬 움직임과 역동성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은 단지 돌판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어둠을 폭로하며, 그들의 가장 깊은 곳까지도 밝히 드러내시는 살아있는 말씀이었다. 특히 구약의 예언서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예리한지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주어진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단지 기록된 문자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다. 말씀의 양날 검은 예리하게 우리 속에 감추어진 죄까지 드러내며, 나의 내밀의 생각과 의도까지 밝히 드러내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언제나 벌거벗겨진 존재로 서게 된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다.
정리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실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말씀을 주심으로 변화와 성장을 기대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백성이 살아있는 말씀을 받고도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데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 이제 세 번째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은 살아내야 할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낼 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출애굽기 32장 19절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장면을 전해주고 있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그 판들을 산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그 판들이란 어떤 판들을 가리키는가? 바로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이다. 출애굽기 31장 18절은 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임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출애굽기 32장 16절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돌판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판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돌판을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을 산 아내로 던져 깨뜨렸다.
모세가 이렇게 행동한 까닭은 무엇인가?
본문 40, 41절.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아론은 이스라엘 회중의 거센 요구에 금으로 된 귀고리를 가져오라고 명하였고, 이를 모아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송아지 형상 앞에서 춤추며 축제를 벌였다.
모세가 바로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으로,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버린 채 그 앞에서 제사하며 기뻐하는 이스라엘 모습을 본 것이다. 모세는 크게 노하였고, 그의 분노는 십계명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버리는 행위로 표출되었다. 모세의 이런 극단적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세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출애굽기 본문의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세의 분노는 사실 하나님의 분노임을 알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쏟아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제사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파기될 위기에 처해 졌다.
십계명 제1, 2계명이 무엇인가? 우상숭배에 대한 금지 계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 으뜸 계명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면 시내산 언약을 상징하는 십계명 돌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언약이 깨어지면 십계명 돌판은 그저 돌판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돌판,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십계명 돌판 그 자체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을 지탱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돌판이라도,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이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이라도, 그것 자체가 시내산 언약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언약을 맺은 당사자들 곧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실히 준행할 때, 언약은 유효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 돌판을 주신 것은 그저 잘 보관하고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돌판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내야 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낼 때 진정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살아내는 데 실패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 말씀을 살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데 실패한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록된 66권의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니다. 살았고, 활력이 있어서 실제 힘차게 움직이는 말씀이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말씀이 힘찬 움직임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살아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되어진다. 그때 거기에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들려지게 된다. 날마다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사도행전 7:37-43)
누군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의 특징을 15가지로 정리했다.
1. 살아있는 교회의 지출은 언제나 수입을 초과하고, 죽어있는 교회는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
2. 살아있는 교회는 주차 문제를 겪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주차장이 텅 비어있다.
3.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 시끄러운데, 죽어있는 교회는 공동묘지처럼 고요하다.
4. 살아있는 교회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여 변화를 도모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5. 살아있는 교회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새신자들이 등록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6. 살아있는 교회는 세계 선교를 위해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을 교회 안에 쌓아둔다.
7. 살아있는 교회는 규칙적으로, 기쁘게 봉헌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인색한 구두쇠들로 가득하다.
8. 살아있는 교회는 기도와 믿음을 바탕으로 전진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해서만 행동한다.
9.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 개척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과 시간과 재능을 허비할까 두려워한다.
10.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학교 공간이 늘 부족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교회학교 공간이 남아돈다.
11. 살아있는 교회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환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자기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을 환영한다.
12. 살아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자기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거의 그러지 않는다.
13. 살아있는 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사역에 열정적으로 지원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기능만 돌아갈 뿐이다.
14. 살아있는 교회 성도들은 도와줄 성도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죽어있는 교회 성도들은 불평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15. 살아있는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 성도들은 나눌만한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분은 방금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의 특징, 15가지를 들어보셨다. 이 기준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은 있다고 생각한다.
15가지의 내용을 요약해본다면, 살아있는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는 교회이며, 반면에 죽어있는 교회는 변화와 성장을 멈추어버린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와 성장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왕자 모세가 아니라 광야의 나그네 모세를 통해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구원역사를 이루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탈출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시내산 자락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왜냐하면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맺기 때문이다. 이른 바 시내산 언약이 체결된다.
출애굽기 19장 5,6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의 성격을 보여준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언약의 핵심골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조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 무엇인가?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분명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자,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데 철저히 실패한다. 구약의 역사는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다. 이스라엘의 죄악의 역사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데 실패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킬 수도 없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인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 38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38절.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곧 십계명으로 압축되는 율법은 다름 아닌 살아있는 말씀이다. 모세는 죽어있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살아있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있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신 분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참여하셨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살아계시는,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66권의 성경은 살아계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66권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의 힘찬 움직임과 역동성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은 단지 돌판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어둠을 폭로하며, 그들의 가장 깊은 곳까지도 밝히 드러내시는 살아있는 말씀이었다. 특히 구약의 예언서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예리한지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주어진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단지 기록된 문자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다. 말씀의 양날 검은 예리하게 우리 속에 감추어진 죄까지 드러내며, 나의 내밀의 생각과 의도까지 밝히 드러내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언제나 벌거벗겨진 존재로 서게 된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다.
정리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실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말씀을 주심으로 변화와 성장을 기대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백성이 살아있는 말씀을 받고도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데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 이제 세 번째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은 살아내야 할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낼 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출애굽기 32장 19절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장면을 전해주고 있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그 판들을 산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그 판들이란 어떤 판들을 가리키는가? 바로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이다. 출애굽기 31장 18절은 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임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출애굽기 32장 16절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돌판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판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돌판을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을 산 아내로 던져 깨뜨렸다.
모세가 이렇게 행동한 까닭은 무엇인가?
본문 40, 41절.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아론은 이스라엘 회중의 거센 요구에 금으로 된 귀고리를 가져오라고 명하였고, 이를 모아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송아지 형상 앞에서 춤추며 축제를 벌였다.
모세가 바로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으로,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버린 채 그 앞에서 제사하며 기뻐하는 이스라엘 모습을 본 것이다. 모세는 크게 노하였고, 그의 분노는 십계명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버리는 행위로 표출되었다. 모세의 이런 극단적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세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출애굽기 본문의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세의 분노는 사실 하나님의 분노임을 알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쏟아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제사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파기될 위기에 처해 졌다.
십계명 제1, 2계명이 무엇인가? 우상숭배에 대한 금지 계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 으뜸 계명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면 시내산 언약을 상징하는 십계명 돌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언약이 깨어지면 십계명 돌판은 그저 돌판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돌판,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십계명 돌판 그 자체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을 지탱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돌판이라도,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이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이라도, 그것 자체가 시내산 언약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언약을 맺은 당사자들 곧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실히 준행할 때, 언약은 유효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 돌판을 주신 것은 그저 잘 보관하고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돌판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내야 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낼 때 진정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살아내는 데 실패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 말씀을 살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데 실패한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록된 66권의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니다. 살았고, 활력이 있어서 실제 힘차게 움직이는 말씀이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말씀이 힘찬 움직임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살아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되어진다. 그때 거기에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들려지게 된다. 날마다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